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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역사소설
작성자 정병욱
작성일 2022/09/30 (금) 01:13  [축시(丑時):사경(四更)]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qpddnr901230
ㆍ추천: 0  ㆍ열람: 25      
[봉당] 춘추(春秋) 제23부

달문단군 2년 보력 27년 정월에 조선국의 사신으로 저가(猪加) 창늘(창눌-蒼訥)이 조선국 태자의 배필로 들일 뜻을 밝혔다. 이에 왕은 전례를 따라 공주 대신에 신하들의 여식들을 보내기로 하였다. 대홍우의 딸 호사(護砂)와 죽은 설덕수의 여식들인 예정(譽貞)과 빈(斌)을 모두 조선국으로 보내니 설덕수의 아들들인 설승필(薛承弼)과 설성주(薛誠州) 이들에게 각각 좌부승지(左副承旨)와 우부승지(右副承旨)로 모두 왕의 곁에 보필하도록 명하였다. 이후 내관들의 내정을 엄히 금하도록 명하였다.
2월에 의정부사인 여규상이 세상을 떠났다. 왕이 의정부검상에게 의정부의 수장을 맡겼다. 왕이 엄운의 아들 엄충(嚴忠)과 죽은 서문홍의 아들 서문수(西門洙)를 각각 상세(尙洗)와 상촉(尙燭)을 명하였다.
5월에 대선의를 영돈령부사에 명하고, 대주화를 영중추부사에, 대홍우를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명하였다. 모두 명예직(名譽職)으로 대접하였다. 이들 세 형제는 두 여식을 모두 조선국 태자의 배필로 보낸 것을 가지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을 뿐 아니라 오만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경거망동(輕擧妄動)을 삼가는 것에 온 마음을 다하였다.
7월에 엄운의 딸을 태자의 측실로 맞이하도록 했으나, 갑작스럽게 태자가 병으로 앓아 눕게 되었다. 이에 왕이 예정대로 엄운의 딸을 태자의 측실로 삼아 빈(嬪)으로 책봉하였는데 공빈(恭嬪)이라고 하였다. 이후 태자의 측실을 ‘빈’이라 부르게 되었다.
9월에 태자가 후사를 둘 수 없게 되자 이를 비관하여 태자궁(太子宮)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하였다. 갑작스러운 부고에 왕은 물론, 왕대비도 통곡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달문단군 3년 보력 28년 정월에 의정부검상 엄운이 세상을 떠났다. 왕이 의정부사록으로 있던 엄운을 검상으로 승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엄운이 죽기 직전에 이미 실질적으로 의정부의 수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왕의 슬픔은 더 하였다.
3월에 왕은 의정부에 명하여 정무를 쉬게 하도록 하고 돈령부에게 정무를 맡겼다. 왕이 돈령부의 원만한 업무를 위해, 영돈령부사 이하 돈령부의 관리들을 모두 임명하였다. 판돈령부사에 장계, 지돈령부사에 민송주, 동지돈령부사에 민덕주, 돈령부도정에 황봉수, 돈령부정에 김도서, 돈령부부정에 김강서, 돈령부첨정에 향소우, 돈령부판관에 조인, 돈령부주부에 조덕, 돈령부직장에 조성, 돈령부봉사에 임주실, 돈령부참봉에 강덕상을 명했다.
9월에 양송근을 대광보국숭록대부에, 양송평을 보국숭록대부에 명하였다. 의정부의 대신들과 맞먹는 지위였다.
달문단군 4년 보력 29년에 2월에 역대 왕의 일부 실록에서 오자가 빈번히 발견됨에 따라, 왕명으로 실록을 교정(校訂)하도록 하니 이를 보력교정본(寶曆校訂本)이라 하였다.
4월에 지금의 태백산(太白山)에 화재가 일어나자, 그곳 부근의 고을 백성들은 물론, 산에 사는 동물들이 모두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왕이 강원도관찰사에게 명하여 그곳을 복구하도록 하고 그 터에 인화사(仁和寺)라는 절을 짓게 하였으니 강원도 백성들의 명복을 비는 목적으로 세워둔 것이다.
달문단군 5년 보력 30년 9월에 왕이 훙서하였다. 태자를 옹립하고자 하였으나, 후사가 없으므로 황태후의 어명에 따라 전임 태자였던 사덕태자의 아들 고삼을 후사로 삼았다. 그리고 선왕의 시호를 예종보력대왕(睿宗寶曆大王)이라 하였다. 뒤이어 조선왕 달문단군으로부터 혜공(惠公)이라 봉해졌다.
10월에 연호를 치도(治道)라 하였다.
11월에 왕이 자신의 아버지 사덕태자를 대왕으로 봉하여, 소종(昭宗)이라는 존호를 올렸다. 이후 사덕태자비 윤씨를 소종의 왕비로 봉하여 중덕왕후(中德王后)의 존호를 올린 뒤에 황태후에 봉하였다. 돈령부 대신들이 선왕의 정비 또한 태황태후로 올려 부르기를 청하였으나, 왕이 위계를 생각하여 황태후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명하였다.
달문단군 6년 치도 1년 정월에 조선국 태자의 측실로 보내고자 하였다. 이에 왕이 직접 선발하여 양송근의 딸 영지(靈芝)와 양송평의 딸 동예(東藝)을 보냈다.
2월에 왕이 정무에 미숙한 것을 들어 중덕황태후가 태황태후에게 섭정하도록 권하였다. 신하들이 반대하기도 했으나 중덕황태후가 완강하게 고집하니 태황태후가 왕의 섭정이 되었다. 이후 선산태황태후 노씨는 서둘러 호산궁에서 새 왕의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3월에 왕비를 새로이 간택하였는데 신부평의 딸로 왕비를 삼았다. 태황태후의 명에 따라 소현왕비(紹賢王妃)라고 봉하였으며, 신부평의 아들들을 조정에 불러들이니 장남 신주(申宙)를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에, 차남 신성(申成)을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에 명하였다.
4월에 중덕황태후가 왕의 후궁들을 맞아들이게 하였다. 이때 허장화의 여식인 온서(穩緖)를 상기로, 도방수의 딸을 안도비(安道妃), 공안의 딸을 소비(小妃), 죽은 엄운의 딸을 공비(恭妃), 동방석의 딸을 웅비(熊妃), 동방길의 딸을 정비(貞妃)로 삼았다. 이렇듯 후궁들을 여럿 두니 자연 한 임금을 둔 채 서로 차지하고자 하는 암투(暗鬪)의 조짐이 싹트는 것은 당연한 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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