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병욱
[보덕] 비구니(比丘尼)
수덕사의 어두움이 사라질 무렵 이른 아침부터 법당에서 예불 드리는 승려들의 구성진 소리가 온 절 마당을 에워싼다. 법당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는 동안 공양주들이 손수 부처님의 인자로웠던 생애를 더듬어 보기라도 하듯 아침밥을 짓는 손놀림이 바쁠 법하련만 예불을 드리느라 출출할 법한 불자들에게 베풀 양식을 짓는다는 생각으로 고됨을 내색하지 않는다. 공양주의 고된 노동을 알겠다는 듯 예불을 파할 즈음에 불자들이 분주히 아침밥을 먹어대느라고 절 안의 고요함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해가 중천에 떠오를 즈음 다시 고요함이 찾아오면 절 안은 적적하도록 조용하다. 하지만 가끔 가다가 여자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이 고요함을 깨뜨린다. 『나무아미타불―』 승려의 불경 외우는 소리를 듣노라면 여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울음을 억누르려고 일말의 고통을 견뎌야만 한다는 주지승의 말이 귓가에 쟁쟁하게 아스라히 들려온다. 그녀는 지금 이 고즈넉한 공양주 방에 홀로 머물러 있었다. 자신과 말벗해줄 친구로, 서로 같은 처지에 단 한마디라도 위로해줄 친구도 친척도 없이 이렇게 홀로 외롭게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더없는 가시방석이었다. 주위에 들리는 거라고는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 뿐.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그녀는 한순간 여기에 온 이유조차 알 수 없는 무연고의 몸이라는 사실에 불안함을 떨쳐내기 어렵게 되었다. 햇빛은 점점 밝아오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에게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은데 그녀는 좀체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다. 「아아……!」 이윽고 혼란스러운 틈에 그녀는 귀를 막듯이 두려워하다가 제풀에 지쳐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세속에 벗어나지 못한 몸인 만큼 그녀에게도 인내는 필요로 했으리라. 새벽이 동틀 무렵…… 늙은 공양주는 여자가 머무는 방 앞에 나아갔다. 문은 닫혀 있었고, 불은 꺼져 있다. 이에 공양주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기척을 냈다. 『스님―』 방안의 그녀는 이미 세속에서 벗어나기 직전에 비구니가 될 운명이엇다. 비록 스님되기 직전의 세속 사람일지라도 공양주는 편의상 그리 부른 것이었다. 공양주가 안을 향해, 『스님, 진지 잠수셔요.』 하며 나오기를 바라듯 기척을 내본다. 그러나 안은 고요하다. 그러자, 『스님 진지 못 드시나요.』 하며 늙은 공양주가 한마디해본다. 그러나 그의 기척도 아랑곳없이 여자의 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는다. 그러자 하는 수없다는 듯 문을 벌컥 열어 불을 밝혔다. 순간 공양주는 바로 무엇인가를 보고 놀라는 듯 아이구머니! 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본 여자의 모습은 처참했다. 여자가 스스로 목을 매단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 발버둥을 치고 있었으니 그나마 살생은 면할 수 있었다. 순간 공양주는 비로소 이 여자가 목매달아 죽으려고 벼른 채 작정하고서 그랬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기 두려운 나머지 몸부림을 쳤구나 하고는 안심하였다. 공양주는 얼른 그녀를 재빨리 줄을 풀어주면서 내리고 그 연유를 물어보고자 그녀에게 말벗해주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이러하다. 자신에게는 슬하에 자식을 하나 둔 것이 죽음의 시초였다고 했다. 여자는 본래 서울하고도 구파발(舊把撥)이란 곳에 살았다는데 그녀가 집을 나온 곳이 그 근방에서는 둘째가는 갑부였다고 한다. 헌데 그 집안에 어떤 우환이 서려 있던 탓에 여태까지 벌인 사업이 한 순간에 망한 까닭도 있고 집안에 형제들 다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종국에는 이 사람 남편 마저도 오히려 제 정신이 아니게 되었다. 걸핏하면 이상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고는 미개한 짐승으로 쳐다보듯이 대했고 그 까닭에 그녀에게 성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다른 계집을 불러들이고는 미혼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공교롭게도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그래서 자기는 철저하게 아이를 낳는 기계로 전락했다고 느낀 점을 털어놓던 여자는 곧바로 울부짖었다. 그러자 공양주는, 『세상에…….』 하는 그 이외의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워낙 세대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분도 무시하기 어려운데다 공양주 스스로 겪어보지도, 아니 얼토당토 하지 않은 도덕에 큰 타격이 컸으리라. 이를 보던 공양주도 여자가 말 많고 탈 많은 불쌍한 여인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결국 이 여인에게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뿐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 후 여자는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통에 남편과 이혼한 채 태어난 지 며칠이 된 딸아이를 버린 채 친정으로 갔지만 친정의 냉대를 면할 수 없기에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이곳 절에 이른 것이었다. 주지승은 처음에 그런 그녀를 탐탁치않게 느낀 모양인지 다소 냉소한 분위기를 자아내곤 하였다. 하지만 그런 일이 도리어 그녀 자신에게 수치심을 자아내게 하였고, 심지어는 이 때문에 집을, 아니 절을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기까지 하였다. 하여 스스로 목을 매단 것이라 하였다. 이때 스님이 모습을 드러내니 그녀 자신을 찾는다는 주지스님의 명령이었다. 이윽고 그녀가 주지스님을 맞이하자 스님이 말했다. 『나는 보살님께서 목 매달으신 채 돌아가시는 줄만 알았소.』 자신에게 놀라는 기색을 보이는 스님을 보던 그녀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 요동치는 모습을 잠재적으로나마 느낄 수가 있었다. 『어째서 목을 매셨습니까.』 여자가 침묵을 지켰다. 『어째서 목을 매셨습니까.』 스님이 같은 말로 물어보자 그제서야 그녀는 말문을 열었다. 『딸이…….』 하던 여자의 눈에서는, 『죽었습니다.』 하는 소리와 함께 주르륵 눈물이 흘러 내렸다. 물론 꿈속에서 말이다. 그러자 스님은 염주를 돌리며 기도를 드린다. 『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제 시야에서…….』 이때 스님이 기도를 마치고서, 『극락에 이르셔야 할텐데.』 하며 근심어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자의 눈에서는 순간 휘둥그레졌다. 스님의 진심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여자는 순간 주저 앉으며 울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여자의 사연은 그야말로 굴곡진 인생사였다. 자신은 열일곱에 조실부모하고 오빠 슬하에서 자랐다. 오빠는 원래 서울에서 이름이 난 레스토랑을 운영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IMF가 터지고 나더니 졸지에 자신이 저지른 업보 때문에―오빠가 단골로 있었던, 아니 이용하였던 은행에서 부도가 났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말았다. 그래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맨몸으로 나와 온갖 궂은 잡일을 해대었다. 가령, 술집에서 작부―아니면 여급―라도 하거나, 아니면 윤락가에 가서 몸을 팔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모 보험사에서 보험설계해주는 일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녀는 고등학교 문턱을 간신히 넘었었기에 망정이었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더라면 죽 한 사발도 얻어먹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랬던 것이 이미 죽고 없는 남편이라는 이를 만났었다. 그런데 그들의 결혼이 결코 순탄치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바로 시댁 식구들이 이들의 사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탓도 있었겠지만 보수적인 집안이었고, 그저 아들을 낳는다면 결혼시켜주겠다는 다소 황당한 주문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랬기에 변변치 않은 살림을 차려, 호적상으로나마 부부로서의 연은 맺었다. 그런데 정작 남편은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바로 금치산자라는 낙인 때문이었다. 젊었을 때 다소 부유하게 살았다는 그의 시가도 마찬가지로 경제 불경기 속에서 쇠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까닭에 그녀는 이를 악물고 살림전선에 뛰어들었다. 부잣집 식모살이를 해야만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자그만 변화가 생겼다. 임신이었다. 「이 씨를…… 이 씨를…… 어쩔꼬.」 그러나 기쁨보다는 불안이 앞섰다. 낙태라도 해야 할까. 아니면 인고의 시간을 가져서 아이를 낳아야 할까 순간 그녀는 갈등의 기로 앞에 섰다. 하지만 그 갈등의 고리를 끊었다.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그러나 두 살이 되었을 무렵 공사판으로 직장을 옮긴 남편의 사고로 그만 그녀는 과부의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나이는 서른 두 살. 그래서였을까. 상주도 없이 홀로 빈소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시부모는 무심하게도 그의 빈소에 오지를 않았다. 그리고 삼우제를 지내고 얼마 있지를 않아 원인미상의 간질로 그만 아이를 하늘나라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제가 무슨 철천지 원수라도 던가요? 어흑.』 억장이 무너진다는 듯 그만 그녀는 울부짖고 말았다. 스님은 그 여인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거리고서 스님은 자신이 주지스이 아님을 밝히고 서둘러 잠시 주지승을 부르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삼십분이 지나가고, 이윽고 스님이 주지승을 데려왔다. 주지승의 복장이 허름하기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는 갓 예순을 넘긴 영락없는 노인네였다. 그는 이곳 불가에 귀의한 지 사십 년이 넘었다고 했는데 어린 처자식을 굶주리는 것은 이겨내지 못하고 편지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출가해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러나 중이 되어서도 세속에 미련이 남아 뭇 여자들을 자주 희롱거리로 삼았다. 이유없이 사내들과 싸움을 벌이고, 육욕에 취하고, 고기도 거침없이 먹어댔다. 돈을 훔치고, 사람을 해치려고 들었다. 이런 일탈의 행위가 계속되자 승려들이 이를 중히 여겨 엄히 다스려 주기를 주지승에게 청하였다. 『이놈 만청아! 정녕 속세에 미련이 남았더냐. 정 그리 그리우면 여기에 한 발 짝도 오지 말아야 하느니.』 이것은 절교를 선언함과 진배가 없었다. 자신은 차마 지키지 못한 것이 있음을 깨닫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처자식을 버린 세속에서의 온갖 근심과 미련을 떨쳐보겠노라고 약조했다. 그렇게 스승의 곁에서 부처의 가르침과 대자대비하심을 배우며 자신 안에 가두어진 업보를 씻는데 주력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의 육체와 정신이 너무나 탁해져 있었다고. 그는 부처를 은인 삼아, 벗을 삼아 믿었다. 그렇게 절에서 수도하기를 서너 해. 법당에서 예불을 드릴 때마다 만청의 눈에서는 깊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처님의 인자하신 미소가 얼어붙은 만청의 마음을 봄눈이 녹듯이 따스하게 느꼈다. 그동안 속세에 맺힌 한도 덩달아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아! 내가 그 동안의 번민이라는 바다에 허우적거리다 어느 뱃사공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했더라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떠올렸다. 망망대해에 맞먹는 번민에 허우적거리는 줄 모른 채 여태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음을 절감했다. '부처님의 자비로움을 의심한 불초 비구(比丘)를 너그러이 용서하옵소서.' 만청의 얼굴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는 합장을 한 채 웅얼거리며 독경을 외운다. 웅얼거리는 것을 바라보던 주지승의 얼굴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동안 모진 세파에 허우적거리더니 이제서야 마음의 안식을 얻는구나. 불쌍한 것.' 비구니의 절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주지승은 한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밤이 깊어갈수록 비구니의 불경 외우는 소리가 그칠 줄 모르고 청아한 소리가 온 절안을 휩싸안았다. ― 비구니는 그 보름 뒤에 이른 새벽의 정기를 받으며 정든 수덕사를 떠나 개심사로 향했다.
|
http://www.1392.org/bbs?history23:428  
|
| 
|
| 창작 역사소설 최근 댓글 | ||||||||||||||||||||||||||||||||
|
정병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