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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역사소설
작성자 정병욱
작성일 2022/09/12 (월) 02:43  [축시(丑時):사경(四更)]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qpddnr901230
ㆍ추천: 0  ㆍ열람: 17      
[보덕] 칠삭둥이 제44편

한편 남이가 역모를 꾀한 것을 간파한 명회는 자광에게 직접 고변하도록 했다. 자광은 당시 병조참지로 있었다. 그는 좌부승지 이극증을 찾아갔다. 이때가 예종 즉위년 10월 24일 야심한 밤이었다.
“신이 급히 계달할 일이 있습니다.”
자광이 승정원에 고하였다. 이때 이극증이 입직 승지로 있었다. 해서 안중경이라는 대전 내관에게 찾아가 임금을 알현하기를 청했다. 자광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고 보니 황망(慌忙)할 뿐이었다. 자광을 알현을 받은 임금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족질을 앓고 있는지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유자광이 직접 아뢰길,
“지난번에 신이 병조에 입직한 적이 있었는데 남이도 겸사복장으로 입직해 있었습니다. 남이가 신에게 말하길, ‘세조께서 우리들을 대접하길 아들과 다름없이 하였는데 이제 나라에 큰 상사가 있어, 인심이 위태롭고 의심스러우니 아마도 간신이 난을 일으키면 우리들은 떼죽음을 당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마땅히 충성을 다해 선왕 마마의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이를 듣고 대답하길, ‘어떤 간사한 사람이 있어 난을 일으키겠는가?’하고 되물었더니 남이가 말하길 ‘김국광과 노사신 등을 죽이는 게 옳지 않겠는가?’하고 대답하더이다. 남이가 신의 집에 찾아와서 말하길, ‘혜성이 이때까지 없었는데 보았느냐?’고 묻고는 ‘광망(光芒)이 희면 장군이 반역한다.’라는 강목(綱目)의 구절을 들려주더이다.”
금상은 그저 묵묵히 경청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남이가 탄식하길, ‘이는 반드시 응함이 있을 것이로되, 거사할 때가 왔다.’라고 하며, ‘수강궁보다는 경복궁에서 거사하여야 한다.’라고 말하였나이다.”
명회에게 들이 내민 북정가의 노래 가사 내용을 과장하여 아뢰었다. 순간 왕의 눈빛은 상서롭지 않았다. 임금이 감정을 억누르며
“그렇다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고 자광에게 물으니
“밤을 타 가서 잡으면 혹 도망하여 숨을까 두려우니, 날이 밝길 기다렸다가 한 사람을 시켜 명패(命牌)를 가지고 부르면 잡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임금이 그제야 끄덕이고 승낙하였다. 날이 밝아갈 즈음에 남이의 집을 병사들이 에워쌌다. 이윽고 남이는 붙잡히고 말았다. 임금은 즉시 남이에 대한 친국을 시작했다. 임금이 남이에게
“네가 요사이 어떤 사람과 만나 일을 꾸몄느냐?”
왕이 묻자 기억나지 않은 것처럼 머뭇거리다가, 유자광을 만난 이야기를 꺼냈다. 유자광이 밀고한 이야기를 왕이 직접 추궁하자 남이가 억울한 듯
“유자광이 본래 신에게 불평을 가졌기에 신을 무고한 것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울먹이며 대답하였다. 그러자
“세조대왕의 영이 빈전에 계시니 너는 사실대로 말하라.”
왕이 다짐하듯 재촉하였다. 남이가
“소신이 어찌 주상을 경복궁으로 옮기려 하겠습니까?”
하자 왕이 곤장을 치도록 했다. 이때 한명회가 국청에 있었다.
“신이 일찍이 남이와 더불어 말하지 않았으니 청컨대 대변하게 하소서.”
왕이
“경은 자리에 나아가라.”
하며 허락했다. 명회는 주인인 남이와 같이 잡혀 온 癸集從에게
“남이와 왕래한 사람이 누구누구더냐.”
묻자, 종은
“정승이라 일컫는 이가 왔었습니다.”
하였다. 명회가
“지금 정승이 많은데 네가 본 이는 누구더냐?”
물으니
“강씨(康氏) 성을 가진 정승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에 강순이 잡혔다. 세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게 엊그제인데 한순간 역모의 수괴로 몰려버린 신공신(新功臣)들의 비극을 일러 말해 무엇하랴. 남이는 영순군(永順君) 보성군(寶城君) 춘양군(春陽君) 등을 옹립하고자 하였다고 불었으며 강순은 늘그막에 와서야 반역의 수괴라고 토설한 남이의 행태에 격분하였다. 변자의 문효량 고복로 오치권 조경치 등 이십여 명을 저자에서 효수하였다. 세조대왕의 길동무를 보낸 셈이라면 셈이랄까. 왕은 적개공신(敵愾功臣) 일등(一等)으로 추록하고, 한명회 신숙주 등을 이등(二等)으로 추록하였다. 곧이어 예종 1년 1월 23일 한명회를 영의정으로 삼았다.
“기쁘시겠습니다. 모든 것이 상당군 대감 뜻대로 되시지 않았습니까.”
왕은 비아냥거리며 인사를 하자 명회는 천진무구의 미소를 띠며
“전하, 신을 믿으시옵소서. 신이 전하께 충성을 바칠 것이옵나이다.”
소회를 밝히자
“어련하시겠습니까.”
하고는 족질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인지 금상이 갑작스레 졸도(卒倒)하였다. 같은 천출인 유자광이 곁방에서 이를 지켜보다가 찾아와서
“보셨습니까, 상당군 대감.”
묻자
“똑똑히 보았네, 보았고말고.”
명회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이번이 두 번째로 맡게 되는 영의정 자리였다. 그뿐인가. 딸들을 내리 왕실에 시집을 보내어 국구(國舅)의 몸까지 될 뻔하지 않았는가. 하나는 해양대군의 배필로, 또 하나는 자산군의 배필로 보냈다. 그 천진무구한 웃음 뒤에 감추어진 권모가(權謀家)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렇게 유자광은 한명회의 수족이 되었다. 허물을 벗긴 뱀처럼.
한편 대행왕의 대상(大喪)을 치렀다. 대행왕의 시호를 세조대왕(世祖大王)이라 하고, 능호(陵號)를 광릉(光陵)이라 일컬으니,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대행왕의 장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자그마치 재위 2년을 눈앞에 두고 젊은 신공신들과 새로운 개혁을 도모해보지도 못한 채 피다 만 꽃봉오리처럼 미완성으로 끝난 순간이었다. 대행왕은 왕비인 한백륜의 여식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다. 아들인 원자가 나이가 다섯인지라 손이 많이 가므로 제안대군(齊安大君)이라는 군호를 내리고, 딸 역시 그러하므로 현숙공주(顯肅公主)라고 부르게 했다. 이렇듯 젊은 왕이 세상을 버리게 되자 자성대비는 슬픔을 채 억누르기도 전에 한명회와 신숙주 같은 훈구대신(勳舊大臣)들을 불러내어 후사를 누구로 정할지에 대해 상의한 끝에 자산군을 새 임금으로 맞이했다. 갑작스럽게 선왕이 하세한 까닭에 단 하루라도 보위를 비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월산군이 후사를 이을 수 있음에도 심신이 병약한 것을 매양(每樣) 근심하므로 열두 살인 자을산군이 보위를 이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새 임금의 생모가 되는 수빈이 왕비로 봉하지 못했으므로, 당분간 옛 명례궁, 곧 수빈궁에 기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창졸간(倉卒間)에 대상을 또 당하여 경황이 없는 처지이고 보면 수빈의 심사가 편치 않은 건 둘째치더라도 왕실에서조차 이렇다 할 법도를 따질 여력이 없게 되니, 자연 한명회 같은 훈구대신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엊그제만 해도 천진무구의 깨끗한 성품을 가질 것 같았던 한명회였다. 그런 한명회가 수양대군을 주군으로 모시어 정란을 도모하여 주군이 보위에 오를 수 있게 했으나 개인사적(個人史的)으로는 마냥 좋을 수 없었다. 자신의 네 딸 가운데 첫째 딸을 빼고 모두 짧은 수명으로 요절하였다. 둘째딸은 신숙주의 맏며느리로 시집을 보내고 나서 십 년도 채 못 채우고 단명하였으며, 셋째딸은 선왕인 해양대군의 첫 배필이 되었으나 아들을 낳은 지 보름도 채 안 되어 산후병으로 단명하였다. 특히 자신의 외손인 인성대군은 세 돌이 되어서 세상을 떠났다. 이렇듯 두 여식과 외손자를 모두 가슴에 묻는 참척의 고통을 겪고야 말았으니 한명회가 얻은 권세의 대가가 그토록 혹독했다. 그런데 하느님이 이를 보상하기라도 하듯 막내 사위인 자산군이 보위에 오르니 다시 부원군이 되어 천하를 다시 호령하게 되었다.
한데 새 금상의 생모가 되는 수빈을 문안을 드리는 걸 가지고, 한명회가 갑자기 선수를 친 바람에 수빈과의 사이가 벌어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찍부터 수빈이 대비가 될 뜻을 내비친 것을 두고 거리를 둔 것도 한몫하였다.
‘치마를 두른 界集이 천하를 호령하는 꼴을 보지 않으리라.’
금상이 즉위한 그 날밤에 치형이 명회의 본가에 찾아와서 따지듯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치형이가 수빈이 자산군에게 인사를 받지 않은 것을 괘씸하게 생각했다며 말을 던지자,
“노여워하신다.”
하며 명회가 말을 되받는다.
“일이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뭘 어쨌기에.”
모르는 척하는 명회다. 과연 모사꾼답다.
“그 자리에는 상당군께서도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한데 한 말씀도 거들지 않으셨으니 수빈께서 당연히 섭섭하실 수밖에요.”
언짢기는 치형이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수빈께서 잘못 오셨네. 오늘은 그 자리를 피해주셨어야지.”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명회의 처사가 매우 섭섭한 말씨다.
“이 사람아, 자산군께서 오늘 등극하셨네. 그 마당에 수빈마마를 대접할 방안을 어떻게 모색할 수 있겠는가. 발상(發喪)이라도 하고 나서 의경세자와 수빈에 대한 추존을 상의해서 올렸더라면 대행대왕께서도 마다하지 않으셨을 걸세. 그런데 눈치도 없이 수빈께서 나설 자리를 분간하지 못하셨으니.”
옳다구나 싶은지 말꼬리를 잡았다 싶은 듯 치형이
“수빈께서 눈치가 없으셨다고 하셨습니까.”
몰아붙인다.
“그 말씀 수빈에게 그대로 전해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을 가려 올리셔야지. 뜻은 그대로 전하시되 말은 가려 올리시라는 게야.”
이때 명회가 난색을 드러내자 치형이 그제야 섭섭함을 토로한다.
“수빈마마께서 누구를 믿고 계시겠습니까. 한데 상당군대감께서 수빈마마를 서운하게 해드리십니까.”
“이 사람아, 왜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는가!”
융통성 없이 덤비려 드는 치형을 껄끄럽게 바라보던 명회가
“내가 수빈과 사돈지간이니 함부로 나설 수 없기 때문이네. 내가 만약 나서게 된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초록동색(草綠同色)이라고 공공연히 권세를 부린다고 거들먹거린다고 조롱하지 않겠는가.”
명회로부터 박대를 당한 치형이 곧바로 새 임금의 잠저(潛邸)인 수빈궁으로 찾아갔다. 명회는 치형이 물러간 뒤에 구들장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고 본다. 향이가 수빈과 갈라서면 반드시 화를 당한다고 직언을 올렸던 게 생각이 난 명회는, 잘못하다가 수빈과 같이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몰락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미쳤다. 명회의 난처한 처지를 모른 채, 수빈은 치형으로부터 명회가 자신에게 눈치 없다는 식의 말을 꺼냈다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 학을 떼었다.
“내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었습니다. 대체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이 내게 그럴 수 있는 겁니까? 상당군이 내 앞길을 막고 있지 않습니까!”
보료 위를 탁! 치며 수빈이 성을 내었다. 냉정(冷靜)을 잃은 수빈은 상당군의 처사가 매우 언짢은 것이다.
“마마, 상당군께서는 속이 깊으신 양반입니다. 필경 그러지 못할 사정이 있으실 것이니.”
“상당군이 나서야지요. 내 아들이 보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그 자리는 당연히 내 자리가 아닙니까. 자식이 임금인데 그 어미가 빈궁이라니요 이게 경우가 닿습니까. 내 아들이 보위에 올랐는데 나는 인사를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나더러 그 수모를 어찌 참으라는 겁니까. 상당군이 이를 만든 거예요.”
그 자리란 왕대비를 두고 한 말이다.
“마마, 물론 마마께서는 당연히 대비마마가 되셔야지요. 그렇게 되는 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입니다. 하나 지금은 때가 아직 이릅니다. 전하께서 대행왕의 상주가 되신 까닭에 대행왕의 빈전을 지키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 터에 마마께서 이때 대비가 되신다면 시기하고 반발하는 무리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눌러야지요, 힘으로 눌러야지요.”
치형이 수빈의 화증(火症)을 달래보지만
“아직은 마마의 세력이.”
“그럴수록 더 눌러야 합니다. 상당군의 속셈을 모르시겠습니까. 자산군을 보위에 올린 것을 마치 자신의 힘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를 견제하는 거지요. 나를 눌러놔야 두고두고 권세를 누릴 것이기에 나 대신 인혜왕비(仁惠大妃)를 왕대비(王大妃)에 앉힌 겁니다.”
수빈은 한술 더 떠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의 전교(傳敎)를 들먹이며 둘째 며느리 한씨더러 대궐로 보내라고 방방 뜨는 것이다.
그 특유의 백령백리한 재주로 수빈은 치형에게 구공신(舊功臣)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라고 주문한다. 이 와중에 갑자기 대왕대비전의 몸이 된 자성왕비는 은밀히 상궁 하나를 불러내어 맏며느리에게 대궐로 급히 오라는 전갈(傳喝)하도록 했다. 효령대군을 대표하는 종반(宗班)들을 비롯해 한명회와 신숙주 등으로 대표되는 원상(院相)들의 의견에 따라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도록 청한 까닭이기도 하지만 왕실의 웃어른으로서 모양이 말이 아니었다. 아녀자로서 집안 살림만을 배우고 익히기만 했을 뿐.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文盲)인데다 세종대왕께서 편찬하신 언문(諺文)을 조금 익혔기에 정무를 맡을 자신이 없을 따름이었다. 더욱이 자신보다 아는 것이 많고, 영리한 수빈이 옆에서 도와만 준다면 그까짓 정무는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던 것도 작용하였다.
그런데 명회가 어찌 된 까닭인지 수빈을 은밀히 불렀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 날에 급히 대왕대비전을 알현하였다.
“조정의 일은 심려치 마시옵소서. 마마, 수빈이 믿는 것은 한명회뿐이니 무엇을 염려합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대왕대비는 머뭇거리며 주저한다.
“오늘 원상들이 모여 마마의 수렴청정을 결정할 것입니다. 마마께서는 그대로 받아주십시오.”
“내가 아는 것이 없으니.”
“신이 미력하게나마 최선을 다할 것이니 신을 믿으시옵소서.”
“상당군 대감. 나는 상당군을 믿겠습니다만 수빈의 대궐 출입을 막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수빈이 주상의 생모이니.”
대왕대비는 한사코 수빈을 불러내려는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마마, 신을 믿으시옵소서. 신은 세조대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온 덕에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린 사람입니다. 신이 이 늘그막에 무엇을 바라리까.”
대왕대비에게 다짐받으려는 듯 쐐기를 박자
“나는 상당군만 믿습니다.”
마지못해 대왕대비는 이를 받아들였다.
“방금 대왕대비를 알현하고 오는 길입니다. 대왕대비께서는 의경세자와 수빈을 추존하는 일부터 논의하라고 하십니다.”
“그 일은 이미 의정부에서 합의를 보았습니다. 자을산군께서 보위에 오르셨으니 의경세자께서는 부왕이 되시는 것이 아닙니까.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시고도 부친인 의경세자를 추존하지 않는 것은, 불효가 되는 것이니 의경세자를 마땅히 대왕으로 추존하는 것이 마땅하게 생각됩니다.”
홍윤성은 명색이 영의정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한명회가 주도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수빈은 어찌하는 것이 좋은지.”
“수빈께서는 의경세자께서 동궁에 계실 때 배필이 되셨으니 마땅히 별다른 칭호를 올려 비(妃)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 당장 대비로 입각(立脚)하기 어려우니 삼년상(三年喪)이 지난 뒤에 예분(禮分)을 갖춰 책봉하는 것이, 정리와 예에 합당하다고 봅니다.”
고령군(高靈君) 신숙주가 대답하였다. 오래전부터 왕실의 예식과 법도에 능한 까닭으로 문종대왕과 세조대왕이 모두 그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다른 원상들이 수긍하는 눈치였으나 능성부원군(綾城府院君) 구치관이 별안간
“불가합니다. 왕대비 마마가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의 전하께서는 대행대왕의 사자(嗣子)가 될 뿐만 아니라 왕대비 마마의 자손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왕대비 마마를 모후로 모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고 나서니
“전하께서는 엄연히 의경세자의 아드님이신데 대행대왕의 양자(養子)로 할 수 있는 겁니까!”
남양부원군(南陽府院君) 홍달손이 말꼬리를 잡고 나서자 왕대비와 수빈의 위차(位次)를 두고 설왕설래하였다. 세조대왕 때부터 싹튼 후계자의 문제가 표면화(表面化)되었다. 이렇듯 하루아침에 끝날 사안이 아닌 것이다. 보다 못해 수빈이 직접 대왕대비전을 찾아가
“마마, 신첩을 죽여주시옵소서! 신첩이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마마!”
대놓고 통곡하는 것이다.
“문을 열어주지 않으시면 이 자리에서 자결하겠나이다!”
순간 수빈의 협박 아닌 협박을 들은 대왕대비는 대행대왕의 혼전에서 덜덜 떨며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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