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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역사소설
작성자 정병욱
작성일 2019/12/12 (목) 22:22  [해시(亥時):이경(二更)]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qpddnr901230
ㆍ추천: 0  ㆍ열람: 15      
[선안] 종이꽃 제14편
제4. 잔치

계월화. 한때 서울 장안에서 이름을 날리던 기생으로 일세를 풍미할 뻔했었다. 대정권번 소속이었던 그녀는 열다섯의 나이에 권번에 든 이후 왜인들을 비롯해 총독부에 아부하던 고관대작에 이르기까지 수청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수청을 들어주시오.”
“내 수청을 들라.”
제각기 요구하는 남정네들의 청을 받을라치면 새침해하며 거부한다면 보통 같으면(참을성이 없으면) 손찌검하며 뺨을 치고도 남을 것일 테지만 계월향은 그 특유의 애교와 아양이 있기에 위태한 상황은 모면한 셈이다. 그런 단골손님이 해방이 되고 제가 스물넷일 때 본국이나 제 고향으로 낙향하니 권번이 문을 닫은 뒤에 길거리에 나앉아 서울 변두리에 선술집을 차려 작부로 생활하였다. 그런 계월화에게 찾아온 이가 다름 아닌 옥선이었다. 옥선이와 나이 차는 많지 않으나 옥선의 아버지와 정분을 나누어 후처가(아님 후실로) 될 뻔한 사연이 있었다. 어느 지방의 대지주로 유명한 모 대감의 첩이 될 뻔 한 이력도 있기는 했건만 서울에 있는 동안 부친은 계월화에게 미쳐 날이면 날마다 야심한 밤만 되면 선술집을 출근하듯 해대었던 거다. 그런 그가 전쟁통에 전사했다는 소식을 옥선이네로부터 듣고서는 서둘러 부산으로 온 것이다. 그때 옥선은 대구 땅의 모처에서 외롭게 살았다. 여자전문학교에 졸업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인텔리 여성이 변두리 땅이나 다름없는 부산 땅에서 다방 마담이 되었던 건 이 계월화에 대한 원한을 복수하고자 한 마음이었으리라. 공교롭게도 아버지는 미군정에 근무한 것을 바탕으로 연합군(아니 유엔군)에 통역관으로 근무하였던 상태였고 전투 현장 안에서 폭격을 피하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다. 때문에 옥선이 자매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꼴이 아닐 수 없다. 전사통지서를 받고 다음날부터 다방을 닫아걸고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상주라고는 두 자매 밖에 없었고 듬직한 아들 하나 두지 못했기에 상갓집의 분위기는 썰렁하다 못해 한겨울 추위조차 막지 못할 정도로 쌀쌀하였다. 장례를 치른 지 이틀이 지나서야 난데없이 계월화가 그것도 한밤중에 찾아와 난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가 어디라고 찾아 오셨수?”
쏘아붙이듯 희진이 앙칼진 소리로 맞이했다.
“그만 두어라.”
언니의 말에 희진은 반감을 거두어 방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빈소는 초라했다. 영정 하나 위패 하나도 없이 놓인 것이라고는 화장하여 수습한 유골함이 전부였다.
“아이고, 아이고.”
방안에서는 희진이 흐느끼는 울음소리뿐이었다. 망자의 생전에 본처는 있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어른들의 강권에 못이긴 채 결혼하였으나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한 채 상처하였다. 이때 가씨라는 이름의 여자를 첩으로 두고는 세 자녀를 두었으나 (아들 하나에 딸 둘) 아들이 병으로 어릴 때 세상을 떠나고, 옥선과 희진이만 살아남았다. 그랬는데 후처가 되 보지도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옥선이 여자전문학교에 갓 입학할 즈음이었다. 그러니 자매의 눈에는 탐탁지 않을 수밖에.
옥선의 집안의 잡동사니들을 뒤지는 않았으나 적적한 상가에 하루라도 빨리 생기를 돋우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 계월화의 태도가 못마땅한 자매는 이윽고 옆에서 거들어주었다. 그래도 망자의 가는 길에 편안히 라도 가야 하지 않으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손수 과일이며 나물, 고기 가릴 것도 없이 국거리 찬거리 전 부침에 이르기까지 음식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다. 이때 부산 판잣집 촌에는 때 아닌 잔치가 벌어졌다. 세 들어 살던 식구들은 옆에서 도와주고 했기에 일은 순조로웠고 한바탕 잔치 분위기로 왁자지껄한 밤이다.
한때나마 훈장을 했던 두 영감이 한자리에 앉아 장기를 두고 있었다.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장기판 위에 놓을 자리를 탐색하는 걸로 소일을 삼는다. 이들은 각자의 고향에서―산간벽촌이든 낙후한 농가이든―서당을 차려 글공부를 시키던 때가 있었지만 전란이 갑작스레 터지고 보니 터전을 잃어버리고 내려간 곳이 바로 부산이다. 그런데 이들이 디딜 무대는 그 어디에도 없고 설사 어린 아이들이 살아 있더라도 어느 누구 하나 고루한 지식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장기를 두는 이외에는 일이 없는 거다. 한데 이 두 사람 사이에 구경꾼이 기웃거리게 마련. 바로 곡성에서 순사 노릇을 한 중늙은이였다. 한때 왜놈의 앞잡이로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람을 돼지우리에 처넣듯 마구잡이로 들이 넣어대니 상사에게 큰 신임을 얻어 은사금까지 받으니 그 재미로 순사 노릇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러나 천황폐하가 항복문서를 낭독한 뒤부터 순사 자리가 날라 가자 생계가 막막한 것이다. 그렇게 거지 중에 상거지가 되자 본래 고향인 김해 땅까지 처자식을 거느리고 내려와 유리걸식하였는데 전쟁이 터지고 하자 살판을 만들고자 부산에 온 것이다. 처자는 김해 땅에 두고.
“이 순사가 여기는 웬일이신가?”
엄 훈장이 물었다.
“그냥 겸사겸사 구경해보고자 왔소.”
이 순사의 대답에 엄 훈장과 신 훈장은 거들떠보지 않고 장기판을 보며 장기를 두는 것이다.
타지에서 내려와 정착한 이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 판자촌에서 간혹 보이는 경상도 사람들이 보이지만―심심찮게나마―그 중 이 순사에게 만큼은 어느 구석에서 나타나는 들 고양이나 개를 보듯 무심할 따름이기에 그가 있건 없건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순사라는 직함 때문에 거부반응을 보인 까닭이기도 했으리라 보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순사는 제 볼일을 다 보았다는 듯 다른 데로 걸음을 옮겨본다. 이 순사는 판자촌에 뚫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무심히도 하늘은 청량해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하늘을 올려다 본 그는 잠시나마 생각에 잠기어 걸어가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
이 얼마나 좋은 시절이었던가. 이 순사는 한때 미국이 자신에게 좋은 시절이었다. 그의 시각에서는 미국이 원조를 받는 것이 당연했고 왜정 때 자신에게 순사 자리를 맡으면서 처자식을 굶주리게 하지 않아 편하기도 했다.
해방 뒤에는 미군이 진주하더니 왜놈 앞잡이에게 나무라기는커녕 쌍수로 맞이해주는 등 예우를 다함을 잊지 않았기에 이 순사로서는 우호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북괴가 남하하자 미국이 전쟁에 호응하듯 남한에 도움을 주고 이에 더하여 인천에 맥아더라는 사령관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어 상륙하니 이순사로서는 횡재가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순사가 잠시나마 미군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때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 그였지만 입신양명의 영달 때문에 영어 단어를 하나도 모른다지만 지인의 주선으로 근무한 그때를 잊지 못한 것이다. 하잘 것 없는 그이지만 초콜릿과 통조림, 껌 등 이 땅에서는 흔하지 않은 음식들을 군인이 줄라치면 기꺼이 받아들고서 제 식구들을 먹이는 것으로 낙을 삼았더랬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군부대 내에서 일련의 사건―무슨 사건인지 그 내막을 알 길 없지만―에 휘말려 불미스러운 것을 구실삼아 군부대에서 영구히 퇴출되었다. 그것도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그랬기에 이 순사는 부산 땅에 와서 줄곧 백수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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