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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작성자 정병욱
작성일 2016/10/24 (월) 11:55  [오시(午時)]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qpddnr9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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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안] 세계사 강의 24
냉전체제

냉전체제의 전개와 변화

국제연합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가 열립니다. 전쟁과 관련된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전체 회의는 열리지 못하고, 연합국과 패전국 사이의 개별 조약만이 체결됩니다. 그 결과, 독일은 동서로 분단되고, 오스트리아는 중립을 조건으로 주권을 회복합니다. 일본은 미국의 점령하에 있다가 샌프란시스코 회의를 계기로 주권을 회복합니다.
한편, 대서양 헌장에서 구상된 국제평화기구가 국제연합의 출범으로 구체화되었고, 국제연합은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 및 국제협력의 증진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국제연합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가 총회보다 우선하였으며, 특히 상임 이사국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유엔군을 창설하여 국제분쟁에 무력적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냉전체제의 전개

재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는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 세계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로 나누어졌습니다. 동유럽의 공산화와 미국의 트루먼 독트린 발표 이후, 두 세계는 긴장과 대립 상태인 이른바 냉전 체제로 돌입합니다.
미국이 전후 유럽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마셜 계획을 발표하자, 소련은 이에 대항하여 코민포름(공산당 정보국)을 조직합니다. 미국이 북대서양 조약기구로 서유럽 국가들과 상호 군사원조와 집단 방어체제를 갖추자,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과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만듭니다.

제3세계의 대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아프리카에서는 반제국주의와 반식민지주의를 표방한 신생독립국가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미국과 소련 중심의 국제 정치에서 중립노선을 택하면서 국가 간 빈부격차의 해소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콜롬보에서 비동맹 노선을 택한 국가들은 미국과 소련의 대립에 관여하지 않는 제3세계임을 확인합니다. 특히 이 회의에서는 평화 공존의 5원칙을 채택합니다. 그 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반둥회의에서는 국제적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상호간 경제협력을 제창합니다.
제3세계의 등장은 국제사회에서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비동맹 회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증가시키고 그에 따라 강대국들도 이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다극화의 진행

6·25 전쟁의 휴전과 스탈린의 사망 이후 미국과 소련 사이에 평화 공존의 기운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베를린 봉쇄와 쿠바의 미사일 기지 문제로 미·소 간의 위기가 다시 고조됩니다.
이런 가운데 냉전 체제 하에서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양극 체제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제3세계의 등장, 유고슬라비아 등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독자노선 선언, 소련과 중국 간의 이념 및 국경 분쟁, 프랑스의 독자 노선 선언, 유럽 공동체의 출현, 일본의 경제 대국화 등 세계 정세가 양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변화를 보입니다.

긴장의 완화

1970년대 대립과 긴장 상태로 전개되던 미국과 소련 사이에 평화 공존의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서독의 브란트는 동방 정책을 추진하여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고 동독과도 기본 조약을 체결하여 상호 실체를 인정합니다. 이어 동·서 유럽의 35개국이 참여한 헬싱키 협정의 조인으로 유럽의 안정이 보장되어 동서유럽의 교류가 활발히 진행됩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 후,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여 긴장완화 조성에 노력합니다. 또한, 미국과 소련 간에 추진된 전략 무기 감축을 위한 노력을 통해 냉전체제로부터 시작된 국제 정세의 긴장이 완화됩니다.
20세기의 사회와 문화

대중사회의 실현

자본주의의 발달은 농촌 인구를 도시로 유입시켰으며, 출신의 관계 없이 능력에 따라 사회 계층의 이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도시에 거주하며 임금 노동이나 자영업을 통해 생활을 영위합니다.
대중은 참정권의 확대, 사회복지제도의 실시를 통해 정치·사회적 혜택을 입게 되었으며, 공교육 제도, 텔레비전, 신문, 라디오, 영화 같은 대중 매체의 발달 등을 통해 문화적 수준도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이들은 각종 정보에 민감하지만, 농촌에 비해 이웃과 연대감이 약하고, 사고방식도 극도로 개인주의적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대중은 어떤 조직된 집단이나 계급이 통합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수동적이고 감정적이며 비합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의 국제경제질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국제경제질서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의해 주도되어 왔으나, 1995년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면서 자유무역체제가 더욱 강화됩니다. 세계무역기구는 GATT에 없던 세계무역분쟁조정, 관세인하요구, 반덤핑 규제 등으로 강제력이 더욱 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역대상을 농산물, 서비스 및 지적 소유권 등으로 확대됩니다. 따라서 세계 시장에서의 무역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며,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뒤처지는 분야에서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이와 같은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유럽연합, 북미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지역간의 경제통합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 세계경제의 흐름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대중사회의 성격

대중사회의 도래는 사람들이 신분 중심의 봉건주의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대중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주역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신분, 혈연 등에 의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인간 관계가 약해지고, 사회 규모가 커지면서 사람들은 일종의 소외감과 무력감을 느낍니다. 또한 대중은 가치관의 혼란에 직면하고, 무엇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지 방향을 잡지 못하여 무기력하게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중은 누군가가 자신들을 대신하여 생각하고 판단해 주기를 바라는 특징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20세기의 문화

사상의 발달

20세기 들어 유럽의 사상과 철학에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반지성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인간의 정신과 사회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19세기의 실증주의를 극복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니체와 베르그송은, 생(生)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생철학을 주장합니다. 이들은 19세기에 팽배했던 합리적·과학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여, 비합리적인 인간의 직관을 중시합니다.
실존주의는 생철학의 뒤를 이어 제2차 세계대전 후 문학과 예술 분야에까지 확대된 철학사조였습니다. 실존주의는 키에르케고르에서 시작되어 하이데거, 야스퍼스, 사르트르로 이어집니다. 이들은 절망과 불안, 그리고 허무와 부조리의 세계 안에서 현실 존재로 살고 있는 인간의 자유를 추구합니다.
미국에서는 실용주의가 유행합니다. 특히, 듀이는 정신의 과정을 시행 착오의 과정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듀이는 현실을 장애물에 의해서 방해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오히려 분발하여 난관을 극복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학문의 발달

심리학에서는 프로이트가 인간의 무의식과 잠재의식을 분석하여 인간의 비합리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인간의 행동이 무의식적 상태에서 본능적 충동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았습니다.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인간의 이성이란 본능적 충동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은 의학, 심리학, 철학 등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경제학에서는 케인스가 수정자본주의 이론을 제시합니다. 그는 완전 고용을 실현·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비와 투자, 즉 유효수요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공공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케인스의 이런 주장은 세계 경제공황 이후 미국 뉴딜 정책의 이론적 바탕이 됩니다.
사회학에서는 막스 베버가 사회과학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여 자본주의의 구조를 사회적으로 규명하고자 했습니다. 막스 베버는 사회 현상을 과학적 인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그는 역사를 경제적 토대로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를 비판하며 종교나 정치 행위로도 역사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는 근대 유럽으로의 자본주의의 발생을 칼뱅주의의 금욕과 근로에 힘쓰는 종교적 생활태도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에서는 슈펭글러와 토인비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역사학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에서 문명을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고, 모든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문명도 발생·성장·노쇠·사멸의 과정을 밟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한편,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의 기초를 문명에 두고, 문명을 유기체처럼 발생·성장·해체의 과정을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문학과 예술

생의 철학 및 정신분석학의 발달은 문학작품에서도 인간의식의 깊은 흐름을 탐구하게 만듭니다. 조이스와 프로스트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그린 작품들도 많이 등장하였는데, 이러한 경향은 해밍웨이와 포크너 등의 문학작품에 잘 나타납니다.
한편,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르트르와 카뮈도 작품활동을 열심히 하였는데 특히 카뮈는 부조리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소련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문학활동이 주류를 이루어, 고리키가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대표했습니다.
미술분야에서는 전통적인 미의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미를 창조하려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20세기 전반에는 야수파의 마티스, 입체파의 피카소, 초현실주의의 달리 등이 새로운 화풍을 전개합니다. 그후 기하학적인 구성과 색채를 사용한 추상파 등도 나타납니다.
음악분야에서는 스트라빈스키가 불협화음을 사용하여 전통적인 음악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했고, 시밸리우스와 소스타코비치도 다양한 현대음악을 창조합니다.

대중문화의 발달

현대사회에서는 생활 영역이 다양화되고 교육 및 경제적 기회가 개방됨으로써 특권 계층이 향유하던 전근대적 문화 대신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가 발달하게 됩니다.
특히, 대중매체의 발달은 대중문화의 발달에 크게 기여합니다. 1920년대부터 라디오가 가정생활에 보급되면서 대중문화가 널리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그후 영화와 텔레비전이 등장하여 문화의 대중화를 가속화시킵니다. 또한, 1990년대 인터넷의 등장은 세계적 규모의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나 대중문화는 개성을 무시하고 감각적인 욕구 충족을 위한 상업주의가 만연되는 문제점을 낳기도 합니다. 특히, 대중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 서게 되므로, 문화에 대해 수동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대중매체의 발달로 선진국의 문화가 후진국에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문화적으로 종속되는 문제도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첨단 과학 기술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고도 성장

과학과 기술의 발달

20세기 과학의 가장 큰 성과는 물리학 분야에서 나타납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여 뉴턴이 정립하였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에너지의 개념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의 연구성과는 양자학의 발달과 우주에 대한 이해를 넓혔으나, 원자 폭탄의 제조 원리에 적용되는 불행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생물학과 의학에서는 모든 생명체의 유전 정보가 담겨 있는 DNA 구조가 밝혀집니다. 이로써 시험관 아기가 탄생하고 인공심장이식이 가능해졌으며, 인간게놈프로젝트를 통해 인체의 신비를 밝힐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들은 우주 정복 경쟁에 나섭니다. 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호를 발사한 것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1969년 아폴로 우주선을 발사하여 인간을 달에 보내는데 성공합니다.
20세기 과학 기술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컴퓨터의 등장이었습니다. 1950년 수식을 계산하기 위해 발명된 컴퓨터는 그 성능이 꾸준히 향상되면서 산업과 군사 분야에서부터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의 사용이 급증하면서 컴퓨터는 인류를 정보화 사회로 이끄는 주역으로 큰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발달의 영향

20세기 과학 기술의 경이적인 발달은 인간 생활을 매우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듭니다. 그러나 인류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와 심각한 환경 오염에 시달리고 있고, 인간 소외와 인간성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밝은 미래와 어두운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전후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

1944년에 연합국의 대표들이 전후의 세계 경제 운영 원칙을 정하기 위해 미국의 브래튼우즈에서 회의를 열어 국제부흥개발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설립에 합의합니다.
국제부흥개발은행은 후진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차관을 제공하고, 국제통화기금은 국제무역에서 외화가 부족한 나라에 대한 금융 지원을 하기로 합니다. 1947년에는 각국의 보호무역장벽을 제거하고 관세율을 낮추어 자유무역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이 체결됩니다. 이러한 국제 경제 기구들의 설립으로 인해 각국의 경제는 더욱 긴밀한 관계 속에 놓이게 됩니다.

자본주의의 변화와 성장

과학기술의 발달과 자유무역의 확대는 자본주의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옵니다. 신상품이 끊임없이 개발되어 수요를 자극하였으며, 각종 첨단산업이 등장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합니다.
경제 운영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중시되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대공황 이전까지는 정부가 경제활동에 개입하는 것을 가급적 억제하였으나, 대공황과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정부가 재정을 투자하여 불황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또한, 정부는 국민보건, 교육, 주택건설 등 국민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분야에서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기도 합니다.

최근의 국제경제 질서

재2차 세계대전 이후에 국제 경제 질서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 의해 주도되어 왔으나, 1995년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면서 자유무역체제가 더욱 강화됩니다. 세계무역기구는 GATT에 없던 세계무역분쟁조정, 관세인하요구, 반덤핑 규제 등으로 강제력이 더욱 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역 대상도 농산물·서비스 및 지적소유권 등으로 확대됩니다. 따라서 세계 시장에서의 무역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며,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뒤쳐지는 분야에서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유럽연합, 북미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지역 간의 경제 통합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 세계 경제의 흐름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유럽의 변화

독일의 통일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영국·프랑스 3국의 점령 지역에 독일연방공화국이 성립됩니다. 한편, 소련의 점령하에 있던 지역에서는 독일사회주의통일당이 독일민주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합니다. 이후 서독이 경제부흥과 함께 유럽 경제 협력기구와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자, 동독과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가입함으로써 분단이 고착화되었습니다. 이후 서독이 경제부흥과 함께 유럽 경제협력기구와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자, 동독도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가입함으로써 분단이 고착화됩니다. 동독은 국가연합에 의한 통일을 주장한데 반해, 서독은 전체 독일의 자유 선거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면서 이로 인한 양국 간의 대립으로 한때 베를린이 봉쇄되는 위기를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의 체결로 양국 간의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졌으며, 국제연합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도 2개의 국가로 승인받기에 이릅니다.
동서독 간 기본조약이 조인된 이후 양국 관계는 평화공존체제로 전환되어 상호방문과 이산가족결합 등 인도주의적 교류를 통해 상호관계를 증진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소련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 정책은 동독주민들의 개혁요구를 불러왔고, 동독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의 저항운동이 거세어집니다. 동베를린 주민 중 상당수가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이주하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집니다.
통일 문제가 현실화되자 동독에서는 통일협상을 할 민주정부의 구성을 위해 다당제 자유 총선거를 실시합니다. 이 선거에서 서독으로의 조기 흡수 공약을 내건 독일연합이 승리하여 연립 정부를 구성하고 서독 정부와 경제, 통화, 사회 통합에 합의합니다. 마침내 통일 조약에 의거, 동독은 서독에 편입됨으로써 통일과정이 완료됩니다.

유럽연합의 성립

세계의 블록화

냉전의 구도가 무너지고 세계 각국이 자본과 기술을 바탕으로 무역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깊은 나라들이 지역간 통합노력을 시도하여 세계 경제는 블록화되기 시작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분리되면서 북대서양 조약기구나 바르샤바 조약기구와 같은 집단 안보체제가 형성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구들은 냉전의 완화와 공산권의 붕괴로 그 기능이 약화되는 대신, 태평양 안전조약, 동남아시아조약기구 등과 같은 지역안보체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로 대표되는 세계적 추세 속에 지역 간 경제협력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국제기구가 등장하는데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 아세안 자유무역지대 등이 그것입니다.

유럽의 통합

프랑스와 독일 등 6개 국이 유럽 석탄철강공동체를 구성하면서 시작된 유럽 통합에 대한 논의는 유럽경제공동체의 결성으로 이어집니다. 그리하여 회원국 사이에 관세 장벽이 철폐되고, 자유롭게 무역거래가 이루어집니다. 이어 군사 정치적 면에서도 통합되어야 한다고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유럽공동체가 결성됩니다.
더 나아가 유럽인들은 공동의 유럽시민권을 가지고 공동으로 국방과 외교정책을 펼치며, 통일된 화폐를 사용하여 하나의 유럽을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조인되어 유럽연합이 탄생합니다. 이후 유럽연합은 정치적 통합에 관한 논의를 진전시키는 한편, 회원국의 수를 늘리고 단일화폐인 유로화를 발행하여 유통시킵니다. 앞으로 유럽연합은 일부 동유럽의 국가들을 포함시키는 문제와 각국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여 완전한 유럽통합을 이룩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공산권의 변화

소련의 변화와 붕괴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제부흥에 힘써 공업생산력을 크게 증진시킵니다. 스탈린의 뒤를 이은 흐루시초프는 과학기술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여 미국보다 먼저 인공위성을 띄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공산당 중심의 통제경제 체제를 강화시켜 경제성장의 둔화를 가져옵니다. 그 후 브레즈네프의 통치 아래에서 소련 사회는 관료 계층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됩니다.
1985년에 등장한 고르바초프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의 활성화를 위해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리는 새로운 노선을 내세웁니다. 관료계층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은 이런 변화에 반대하는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이로 인해 공산당이 몰락하여 고르바초프를 대신하여 옐친이 정권을 잡습니다. 옐친은 소련을 해체하고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독립국가연합을 구성합니다.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옐친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받아들입니다. 이에 따라 러시아에는 수많은 자유기업이 등장하였고, 미국 및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도 진출하여 자본주의 계열의 정당 간의 갈등, 러시아 연방에 속해 있는 체첸 등 주변 공화국의 분리 독립운동 등의 불안 요소들만 남아 있습니다.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동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지배 아래에 있었으나 공산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한 저항운동과 소련의 지원으로 전후에는 대부분 독립을 달성합니다.
유고슬라비아는 인민 해방군의 티토가 수상으로 임명되어 연방정부를 수립하고 새 헌법을 채택한 후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그 후 소련의 스탈린과 이해가 엇갈리기 시작하여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여러 나라와 정치적·경제적 교류가 중단되고, 독자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씁니다. 그러나 티토의 사망 후 연방 체제가 무너지고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신유고 연방이 성립됩니다.
폴란드는 소련의 개입으로 폴란드 노동자당이 정권을 장악하여 인민공화국 헌법이 제정됩니다. 폴란드에서는 1980년, 육류가격인상을 계기로 발생한 노동자의 파업이 일어나 전국을 들끓습니다. 1989년에 실시된 총선에서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이듬해 대통령 선거에서 바웬사가 민선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의 세력권에 들어갔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는 대학생과 시민들이 반소·반공 운동을 일으켰으나 소련군의 개입으로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낸 채 진압됩니다. 헝가리는 계속된 민주화의 요구에 부응하여 일당 독재에 의한 사회주의 체제의 마감을 선언하고 다당제와 대통령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채택합니다.
그 밖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나 다당제의 의회제도가 성립되고 슬로바키아가 독립하였으며, 루마니아에서도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처형되어 자유주의 개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개혁과 개방

중국의 공산화

중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연합국에 가담하여 일본의 침략을 물리칩니다. 그러나 전후에 통일정부 수립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갈등이 재현됩니다. 국민당은 공산당을 배제한 상태에서 독자적인 국민대회를 열고 장제스를 총통으로 취임시킵니다. 이로 인해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내전이 벌어집니다.
국민당은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한때 공산당의 근거지인 옌안을 점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민당 관료의 부정부패와 중국 인민들의 반감이 더해져, 국민당은 그 세력을 지탱하지 못하고 공산당에게 밀리기 시작합니다. 한편, 농촌의 농민과 도시의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획득한 공산당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걸고, 만주와 화북 지역을 확보한 후 1949년에는 중국 전역을 장악합니다.
공산당은 마오쩌둥을 주석으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토지개혁과 산업의 국유화 등 사회주의 정책을 실천해나갑니다.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으로 옮겨가 중화민국을 세웁니다. 중화민국은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여 아시아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문화대혁명

중국 공산당은 토지개혁을 통해 봉건적 지주제도를 폐지하고 중국 내에 만연해 있던 관료주의의 폐단과 부정부패를 일소했으며, 개인의 이윤 추구를 금지시킵니다. 또 1,2차 5개년 계획을 통해 인민공사를 설립하고, 대약진 운동을 전개하여 경제부흥을 꾀합니다.
그러나 중·소 이념 분쟁으로 소련의 원조가 중단되고, 연속된 자연재해로 경제적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마오쩌둥의 노선에 대한 비판에 따라 류 사오치, 덩샤오핑 등 실용주의자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경제적 통제를 완화시키자, 마오쩌둥과 장칭은 문화대혁명을 일으킵니다. 특히 장칭은 홍위병을 조직하여 반대파를 실각시키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킵니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중국의 전통문화 유산을 파괴되고, 정치·경제·사회의 혼란이 극심합니다.
중국의 개혁
마오쩌둥이 죽자, 덩샤오핑이 중국의 실권을 장악합니다. 덩샤오핑은 농업·공업·국방 및 과학기술분야에서의 현대화를 정책 목표로 세우고 미국,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통해 경제 원조를 얻어냈으며, 개혁과 개방 정책을 실시합니다. 중국은 사회주의계획 경제에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의 요소를 가미하여 기업의 독립 채산제를 확대하고, 농천에서의 잉여 생산물의 판매를 허용합니다.
그러나 개혁과 개방의 부작용으로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심화되었으며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는 지식인, 학생들과 공산당 지도부 간의 의견 차이가 드러납니다. 학생과 지식인들은 천안문에서 부정부패의 일소와 정치적 자유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가 보수파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되었습니다. 이후 실권을 장악한 장쩌민이 경제 개혁을 추진한 결과, 중국은 21세기에 가장 큰 경쟁력을 가진 나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 세계사 강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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