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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上) 21년, 개국634(2025)년 을사(乙巳)
○ 좌목(座目)
* 한성부판윤 겸비변사제조 한명회 (유사당상) ~ 04.02
* 군자감정 겸비변사낭청 이성필 ~ 01.21
┖ 01.21 ~ 04.02 훈련원정 겸비변사낭청
* 상의원첨정 겸비변사낭청 강준영 ~ 04.02
┖ 04.08 ~ 06.23 행의정부검상
┖ 06.23 ~ 08.06 행의정부검상 겸창국기영도감낭청
비변사를 폐하다.
○ 1월 열린 제194차 윤대에서 한성부판윤 겸비변사제조 (유사당상)한명회가 한성부 및 비변사 업무에 대해 보고하고 아뢰기를,
“비변사가 개국625년 개청하였으니 금년이 열 번째 해가 되며, 내년 3월이면 만 10년이 됩니다. 이제 조정의 기능이 대부분 정상화되거나 새로운 기준으로 정착되었으니, 바야흐로 폐청을 논의할 때인줄로 아룁니다. 이에 연초부터 자세한 방안을 마련하여 금년 창국기념일에 즈음해 폐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청합니다. 전하께서 비변사 체제 이전 수준으로 정무를 보시는 것이 어려우시다면, 신의 소견으로는 두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첫째는 의정부를 두어 비변사 체제와 이전 체제의 절충을 꾀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동궁에 대리청정을 명하는 것입니다. 두 방안이 아직은 소략하오나, 논의를 윤허하여 주신다면 신료들이 머리를 맞대어 더 구체적이고 발전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변사 체제가 이 이상 지속된다면, 조정에 간신(奸臣)이 버티고 있어 변화를 도모하기 어렵다는 혐의를 얻을 것이 두렵습니다. 청컨대, 가납치 않으신다면 신은 이만 물러나고자 합니다.”
하니, 3일 전교하기를,
"비변사에 명한다. 비변사가 비록 오래 운영되었다고 하나 판윤이 지적한 것처럼 일상적인 관청이 아니므로 가능하면 중지하는 것이 옳다. 대리청정은 서연 진행이 없어 그 자질과 득실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일단 의정부 체계를 복원하는 것이 우선이겠다. 이에 관하여 비변사에서 조정 중론을 결집하여 보도록 하라."
하였다.
○ 2월 열린 제85차 주좌에서 의정부 운영 방안을 논의하였고, 결과를 유사당상이 3월 13일 어전에 계하였는데 그 대략에,
"먼저, 의정부 체제에 대해 아룁니다. 우선 의정부의 목표가 비변사 체제와 이전 육조 직계 체제의 균형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변사운영절목을 기준으로 일부 조정을 거쳐 준용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논의하였습니다. 비변사의 특수성인 인사와 병권, 그리고 의정부의 본래 기능과 취지를 고려하였을 때, 현재 전결 사항인 '전조 수장의 평정'을 삭제하고, 제청 사항인 '국방, 외교에 관한 사안'을 직계 사항으로 이동하는 방향으로 우선 의견을 모았습니다. 평정 업무를 없애고 자문 기능에 집중한다면, 당상들의 의정부 참여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항목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견이 제기되지 않았는데, 운영하면서 조정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여깁니다. 비변사를 폐하게 된다면, 주좌를 함께 폐하고 윤대를 월 1회 시행하자는 것이 조정의 중론이었습니다.
처음 비변사 개청을 논의할 때, 의정부 체제를 배제한 이유는 당하 무관을 임명하지 못한다는 것과 겸직이 불가하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당하 무관 금지는 경국대전의 조항인데, 본조에서는 임명된 전례가 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아룁니다. 다만, 조정 관원이 여전히 넉넉치 않은 상황에서 겸직 불가에 대한 우려가 많았습니다. 한시적으로 허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는 창국대전 이전의 규정이므로 특별한 결단이 필요한 부분으로 조정에서 청하기는 어렵습니다. 경아전 제도를 살려 행정 업무를 분담하자는 것이 신의 방안이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의정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난 후에 추진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습니다. 조정 관원이 많지는 않으나 신진이 더러 있고, 천거 출사 등도 기대되는 만큼, 당하관 1원 정도로 우선 개청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생각됩니다."
하니, 14일 전교하기를,
"보고한 바를 잘 알았다. 비변사 폐청에 앞서 정리해야 할 사무가 있을 수 있으니, 관련 업무가 마무리되면 다시 계하도록 하라. 의정부 개청, 도감 재개 등은 관계 및 주무 관청의 의견을 살펴 추후 결정하겠다. 계본 말미에 의정부 관원을 추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 비변사 논의를 거쳐 27일 정기 천거와 비변사등록 작성 업무는 의정부로 이관하여 진행할 것을 청하고, 의정부 관원으로 유사당상과 낭청 강준영을 의망하니, 4월 1일 비답하기를,
"의정부 관직은 겸할 수 없으므로 일단 전원 비변사 겸직을 면직한다. 그간 비국에서 조정 백관을 통솔하고 각종 사무를 감당하는 일에 노고가 적지 않았다. 오는 창국기념일에 전체적인 치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 현재 공석인 형조 사무는 전례에 따라 지방관 장계 또는 사헌부를 통해 처결한다."
하였다. 개국625년 3월 25일 비변사를 개청한 후 9년 8일 만에 폐하였다.
통훈대부 박세당의 졸기(卒記)
○ 1월 15일 통훈대부 박세당이 졸하였다. 박세당(朴世堂)은 전라도 나주인이며 본관은 반남, 호는 우송(愚松)이다. 개국626년 11월 입조하였고, 소과 입격자 천거로 이듬해 4월 1일 출사하여, 승문원, 은율현, 호조, 실록청, 사옹원, 비변사 등을 거쳐 개국630년 12월에 품계가 계궁에 이르렀다. 이후 이조와 예조, 호조와 예조 등 두 개 아문의 수장을 오래 역임하고, 개국631년 5월에는 통례원인의를 겸하여 왕세자사부빈객상견례에 참여하였는데, 그 공로로 근정삼급 진충장을 수훈하였다. 【節要 제7권】 10월에 다시 비변사로 복귀하여 오랜 기간 2인 체제로 근속하며 비변사 안정에 기여하였으나, 개국633년 2월 종묘제례를 앞두고 행방이 묘연해져 파직되었다. 8월에 이르러 소명하고 청단도찰방으로 복직하였으나 이내 파직되고 이듬해 부고가 전해졌다. 【政案】 지역 활동은 거의 없었으나 시전 갑부동산을 운영하였고, 정석학당에서 판소리를 강의하니 호응하는 백성이 많았다. 규례(規例)에 밝아 주변에서 크게 의지하는 바가 있었다.
의정부 체제가 좌초되다.
○ 4월 열린 제195차 윤대에서 상서원정 홍봉한이 문관 인사이동에 대해 아뢰며 한성부판윤 한명회와 상의원첨정 강준영을 각각 의정부좌참찬과 행의정부검상에 의망하니, 8일 전교하기를,
"판윤이 지난 7년간 비변사 유사당상으로 조정을 이끌었는데 다시 의정부 장관의 직임을 연이어 맡긴다면 이는 과인이나 조정으로서도 미안한 일이지만 판윤 본인 역시 자의든 타의든 이른바 독상(獨相) 체제를 장기간 감당하였다는 점에 있어 실로 아름답지 못한 일이다. 따라서 이조 인사 계청은 첨정을 검상으로 체직시켜 향후 본격 가동될지 모를 의정부 체제를 예비시키는 것으로 결정한다. 지방관 선임 문제는 예조 한 관청에서 근무하였던 8품 관원에게 팔도 전체의 행정을 곧바로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먼저 전라검률에 명하여 짧게나마 하삼도 등 4개 지역을 주관케 하라. 공석이 된 관청의 업무 대행은 규례에 의거할 일이다."
하였다.
○ 5월 열린 제196차 윤대에서 형조판서 한명회가 민사 사건 결송일한 도과에 대해 아뢰며 덧붙이기를,
"의정부 체제에 대한 비변사의 계본에서 정리한 내용에 따르면, 이같은 사안은 비변사운영절목에 준하여 의정부에 보고하고 전결을 받을 사안입니다. 다만 의정부가 아직 준비 단계인 것으로 보고 어전에 아룁니다. 마찬가지로 지방관의 현황 보고에 대한 지침도 내려주시면 일선 관원들의 업무에 참고가 될 것으로 아룁니다."
하였다. 또, 행의정부검상 강준영이 기존의 비변사운영절목을 준용하여 의정부 업무지침을 개정하고자 하는 뜻을 아뢰니, 3일 전교하기를,
"형조에 명한다. 오랜만에 재판정이 기능하는 것이므로 형조에서 잘 관리하라. 말미에 계청한 바에 대하여는, 비변사가 본격 가동되기 전에 의정부가 국정을 통할할 때는 각종 사안을 처리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는데, 시일이 오래 지나 전례를 잘 알고 있는 관원이 없고 비변사에서 확립된 제도를 절충하여 보완하려고 하므로 지금 적잖은 혼란이 있다. 일단 지방관 장계는 어전에 직계토록 하라.
의정부에 명한다. 의정부는 비변사가 아니므로 의정부 사무를 재정립하는 데 있어 비변사운영절목이 아닌 의정부 지침을 기준으로 삼아 여러 절차, 내용을 보완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검상이 홀로 감당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면 여러 관원의 도움을 받아 관련 체제를 마련해 보도록 하라. 필요하면 빈청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의정부 체제 확립에 기여한 바에 따라서는 적절한 포상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겠다. 시일이 늦어지는 것에 구애되지 말라."
하였다.
○ 7일부터 24일까지 빈청에서 의정부 사무 재정립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비변사의 구상에 기반한 보고, 전결, 제청 사항의 정리에 대해서는 합의가 있었지만, 의정부 업무지침의 개정인지 의정부운영절목의 신설인지에 대해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 6월 29일에 이르러 의정부에서 사헌부의 검수를 받아 업무지침 개정안을 완성하였는데, 30일 이를 유사(有司)에 통보하니, 어전 재가 또는 절목 개정에 의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7월 8일 반려되었다.
○ 8월 열린 제199차 윤대에서 사헌부대사헌 이운이 의정부 업무에 대한 우려를 아뢰며 1) 업무지침 개정 재추진, 2) 의정부 주관 회의를 마련 등을 청하고 덧붙이기를,
"관력과 관련 업무 경험이 충분한 관원을 물색하여 수장으로 인선하고, 새로 임명된 의정부 수장이 의정부 업무를 정비하도록 명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만일, 이와 같은 조정이 여의치 않다면 차제에 의정부를 폐하고 종전처럼 육조에서 각 업무를 주관하는 육조직계제를 유지하는 방법도 하나의 선택지로 검토해 볼만 하다 여겨집니다."
하였다. 행예조좌랑 겸창국기영도감낭청 권준우가 비변사 체제 환원에 대해 거론하니, 승정원좌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정예림이 반대하며 의정부 사무를 감당할 수 있는 인사를 배치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이조에서 대사헌을 병조로 체직하는 방안을 아뢰니, 3일 전교하기를,
"의정부, 병조 등의 운영에 관한 여러 관원의 의견을 잘 들었다. 지금 병조가 난맥인지라 이조 수장이 도감 사무를 총괄하면서 무관 인사까지 감당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임기응변으로 조처한 현행 체제를 계속 그대로 두기가 쉽지 않다. 관원 숫자가 넉넉하지 않은 현실을 참작할 때 대사헌을 병조로 체직시킬 경우, 일시나마 의정부를 중지하고 검상을 사헌부 또는 사간원에 명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통청(通淸)에 관한 것이기에 하문하는 것이다. 불가하면 군자감정을 병조로, 검상을 호조로 옮기는 것을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겠다."
하였다. 행의정부검상 겸창국기영도감낭청 강준영이 아뢰기를,
"당면한 의정부 정비 업무의 난맥에 대한 지적에 대하여 아룁니다. 신이 의정부로 부임한 이후 비변사의 논의와 빈청의 숙의를 거쳐 최종적인 업무 지침안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사오나 조정의 공론을 모아 개정한 것으로 혹시 모를 현행 법령과의 충돌에 대비해 사헌부를 통한 검토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최종적인 개정안을 관리단에 서고 갱신을 요청하였사오나 보류가 된 상태입니다. 신이 서고의 갱신을 요청한 것은 법령이 아닌 지침이기에 관청의 전결로 처리하면 된다는 사실을 파악하였기에 그리한 것입니다. 허나 그 이후 개정안 중 일부 내용이 재가를 거치지 않았거나 절목·사목 등의 정식 법령 개정 절차를 따르지 않았음을 사유로 서고 등재가 보류되었사옵니다.
그 이후 관련된 절목을 개정하거나 의정부 운영에 대한 절목을 따로 제정하는 등 여러 방안을 생각해 보았으나 신으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사옵니다. 이는 신의 관력과 업무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는 대사헌의 의견과 같다고 생각하옵니다. 신이 의정부에 부임한지 많은 시일이 지났으나 아직까지 그 업무를 마치지 못했습니다. 지난196차 윤대에서 의정부 정비 업무에 있어 시일에 구애되지 말라하였으나 아직까지 그 정비 업무를 마치지 못한 것은 신의 불찰이라 사료됩니다. 하여 더 이상의 업무 지체를 막고 의정부 정비 업무의 완료를 위해 신 또한 가능하다면 관원의 교체를 통해 의정부 정비 업무를 마무리 짓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료됩니다."
하니, 6일 하교하기를,
"검상이 말한 바를 잘 알았다. 조정 안팎의 여러 사정을 참작하면 의정부 본격 운영이 아직 어려운 듯하니,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좋겠다."
하며, 통청에 대한 이조 의견에 따라 검상을 사헌부로 체직하고 의정부를 폐하였다.
○ 논한다. 의정부 체제 좌초에는 제조를 지낸 한명회의 책임이 크다. 다른 적임자를 찾기 어려운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본인을 참찬(參贊)이라는 고위직에 자천(自薦)하는 형국이 되었으니, 군주로서는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정부 체제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이 있었음에도 실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본조의 법제는 왕명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절목 또는 사목과 상충하더라도 왕명이 있다면 그에 따라 모든 업무를 처결하게 된다. 지침은 이것을 사후적으로 기록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일반적으로 재가가 필요치 않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빈청 논의로 정리된 의정부의 보고, 전결, 제청사항의 세부에 대한 어전 재가를 얻고 지침을 개정하는 것이 순서에 맞는다. 이러한 차이를 명확히 이해한 관원이 적었기에 빈청 논의에서부터 지금과 같은 난항이 예견되었다고 하겠다.
결과적으로는 비변사 체제를 거치며 조정 업무가 간소화된 상태에서 기존의 육조 직계제(直啓制)로 복귀하게 되었으니, 유지만 가능하다면 최선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유지라는 것이 반드시 인력(人力)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겠으나, 명회를 포함한 여러 관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해서 노력할 따름이다. 역사의 한 장(章)이 이렇게 마무리 되었으니, 아조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붓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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